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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REEWORLD

숲속에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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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거름엔 포도나무가 되고 싶다.

-조미희-


늦은 햇살에 감전된
그 떨림의 시작을 찾아 발 닿은 곳은
한 번도 가 닿은 적 없는 빛의 계곡
간간이 어미 품을 파고드는 몸집 가벼운 산짐승
불쑥 나타나 내 눈동자를 밟고 사라진다

날숨 쉬며 기다려왔던 시간만큼
그제야
제 본래의 모습을 벗어버린
향기로 몸을 다듬는 풀꽃처럼 목이 긴 유리잔 속에서
휘청거리며 맴돌다 흘러내린 포도의 눈물은
침묵의 매듭을 푸는 향기가 된다

인도블록으로 가려진 푸석한 도심의 뿌리엔
빗물보다 진한 수혈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
아무도 말하는 이는 없다

한 모금 머금고
상처 난 뿌리가 또 다른 상처를 천천히 핥아주는 동안
바람은 바람이 되어 소리를 내고
지친 몸을 내맡기는 평화는 길지 않아도 아름답다

어둠의 속살을 벗기는 한 방울의 포도즙은
둥글고 모난 아픔의 자리마다
손끝으로 흐르는 물길을 내고
땅을 들썩이는 뿌리엔 수액이 차올라
다가올 계절은 늘 푸르다

나무는
땅 밑과 땅 위에 몸을 나누고
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성자다

지상에 귀를 대고 선 나무그림자 사이로
사람들이 남겨놓은 눈웃음이 가로등으로 반짝인다

사랑 한 올 명치끝에서 풀려 나와
골 깊은 가슴과 가슴을 지나
금 가고 더께 진 생의 블록을 꿰매고 다듬는 동안
저녁 종소리엔 눈을 감는 하늘
해거름엔 모두 포도나무
그 가지가 되고 싶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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