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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REEWORLD

숲속에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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링크 http://www.donga.com/fbin/searchview?cp=...0203240136
見樹不見林 (견수불견림)

樹-나무 수 愚-어리석을 우爲-할 위
眩-아찔할 현 詭-괴이할 궤嗜-즐길 기


子夏(자하)라면 孔子(공자)의 首弟子(수제자)다. 한 번은 쇆父(거보·魯의 조그만 邑名)의 長(장)으로 가면서 스승을 찾아왔다.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. 이 때 孔子가 강조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.‘無欲速, 無見小利.’(무욕속, 무견소리)-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꾀하지 말라.


그러면서 덧붙였다.‘欲速則不達, 見小利則大事不成.’(욕속즉부달, 견소리즉대사불성)-서두르면 이르지 못하고,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 보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. 論語(논어)에 보인다.


小利와 大事? 하지만 우리 인간은 얼마나 간사하고 愚鈍(우둔)한 동물인가. 눈앞에 이익이 뻔히 보이는데 모른 척 할 사람은 많지 않다. 늘 하는 이야기지만 역사상 黃金을 돌같이 여긴 ‘聖人’(성인)보다는 돌을 黃金으로 여긴 ‘凡人’(범인·보통 사람들)이 훨씬 더 많지 않았던가.


요즘 사회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여러 ‘게이트’도 알고 보면 내미는 돈 봉투를 거절하지 못한 凡人들의 所爲(소위)가 아니겠는가.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. 是非(시비)를 가리고 善惡(선악)을 分別하는 것이야말로 어렵기는 하지만, 그래도 ‘人間’이 해야 할 몫이며 우리가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할 價値(가치)가 아닐까.


孔子는 하찮은 것에 인간의 현명함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. 우리 俗談(속담)에도 ‘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‘는 말이 있다. 한자로는 ’見樹不見林’(견수불견림)이라고 한다. 즉 목전의 이익에 眩惑(현혹)되지 말 것을 강조한 말이다.


중국의 고전에 淮南子(회남자)가 있다. 漢 高祖(한 고조) 劉邦(유방)의 손자인 淮南王 劉安(유안)이 編纂(편찬)한 것이다. 총 21편으로 古今의 治亂(치란)과 興亡(흥망), 詭異(궤이) 등 잡다한 내용을 서술했다. 여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.


‘逐獸者目不見太山, 嗜慾在外, 則明所蔽矣.’(축수자목불견태산, 기욕재외, 즉명소폐의)-짐승을 쫓는 자는 눈에 태산이 보이지 않고, 嗜慾(기욕)이 밖에 있으면 마음의 밝음이 가려진다.


즉, 큰산에 들어가서 짐승을 쫓는 사람은 짐승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산이 보이지 않으며, 욕심이 딴 데 가 있으면 양심의 밝음이 가려져 바로 보는 힘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.


그렇다. 우리 조금만 더 욕심을 내 보자. 이제 나무도 보고 숲도 보면서, 나아가 산까지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. /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·중국문화 sw478@yahoo.co.kr

출처/동아일보[문화가 흐르는 한자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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